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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보철

"임시치아, 대충 쓰다 버리면 안 되나요?" 기공사가 목숨 걸고 깎는 이유 (feat. 빠졌을 때 대처법)

 

치과에서 신경치료나 충치 치료를 위해 치아를 깎아내고(Prep) 본을 뜨면, 최종 보철물이 나오기 전까지 약 일주일 정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치아를 끼워줍니다. 바로 '임시치아(Temporary Crown)'입니다.

 

환자분들은 이걸 단순히 "이 빠진 거 남들한테 보이기 싫으니까 끼워주는 뚜껑"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십니다. 그래서인지 진료실이나 기공소로 이런 문의가 자주 들어옵니다.

 

"이거 혀에 닿는 느낌이 거칠어서 싫은데 그냥 빼고 있으면 안 되나요?" "어차피 일주일 뒤에 버릴 건데 대충 만들어주세요."

 

하지만 보철물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치과 기공사(Dental Technician)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임시치아는 최종 보철물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설계도'이자 '리허설'입니다. 만약 임시치아 관리에 실패하면, 비싼 돈을 주고 맞춘 금니나 지르코니아를 입에 끼워보지도 못하고 다시 만들어야 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기공소 작업대에서 제가 왜 임시치아 하나를 깎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는지, 그리고 여러분이 이걸 소홀히 관리하면 왜 치료를 망치게 되는지 그 숨겨진 이유와 관리법을 낱낱이 공개합니다.

임시치아 제작

1. 임시치아는 '벗겨진 살'을 덮는 붕대입니다

 

치과 의사 선생님이 치아를 깎는 과정은, 치아의 가장 단단한 껍질인 '법랑질'을 삭제하고 그 안에 있는 예민한 속살인 '상아질'을 드러내는 작업입니다.

  • 기공사의 시선 : 깎여 나간 치아는 마치 화상을 입은 피부처럼 굉장히 예민한 상태입니다. 공기 중에 노출만 되어도 시리고, 찬물이나 뜨거운 국물이 닿으면 자지러질 듯한 통증(과민 반응)을 느낍니다.
  • 보호막 역할 : 이때 임시치아는 외부의 온도 변화와 세균, 음식물 찌꺼기로부터 치아 신경(Pulp)을 보호하는 강력한 붕대 역할을 합니다.
  • 경고 : 만약 임시치아가 깨지거나 빠진 채로 며칠 방치하면, 무방비 상태의 치아로 세균이 침투해 멀쩡하던 신경에 염증이 생기고, 결국 하지 않아도 될 신경치료까지 받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2. 진짜 목적 : 기공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잇몸 변형' 막기

 

환자분들은 모르시겠지만, 기공사들이 임시치아를 만들 때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씹는 면이 아니라 '잇몸과 닿는 경계부(Margin)'입니다. 여기가 최종 보철물의 퀄리티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 잇몸은 살아있는 조직입니다 : 치아를 깎고 나면 잇몸은 일시적으로 붓거나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때 임시치아 표면이 거칠거나, 길이가 안 맞아서 잇몸을 찌르게 되면 잇몸은 빨갛게 붓고 피가 납니다.
  • 왜 붓는 게 문제일까요? : 잇몸이 부어오르면, 최종 보철물을 만들기 위해 정밀한 본(인상)을 뜰 수가 없습니다. 부은 잇몸이 치아 경계선을 덮어버리기 때문이죠.
  • 결과 : 붓기가 덜 빠진 상태에서 억지로 본을 떠서 보철물을 만들면, 나중에 잇몸 붓기가 빠지면서 보철물과 잇몸 사이에 흉한 빈틈(Black Triangle)이 생깁니다. 그 사이로 음식물이 끼고 충치가 다시 생깁니다.
  • 기공사의 노하우 : 그래서 저는 임시치아를 깎을 때, 잇몸이 쉴 수 있도록 형태를 아주 매끄럽게 다듬는(Polishing) 과정에 엄청난 시간을 쏟습니다. "임시치아가 잇몸을 예쁘게 성형해 줘야 최종 보철물이 딱 맞는다"는 것이 기공소의 불변의 법칙입니다.

 

3. "치아가 움직인다?" 공간 유지 장치의 역할

 

우리 치아는 빈 공간이 생기면 그쪽으로 쓰러지거나(Incling), 솟구치는(Extrusion) 성질이 있습니다. 아주 무서운 본능이죠.

  • 지대치 이동 방지 : 임시치아를 끼지 않고 며칠만 지나도, 양옆의 치아들이 빈 공간으로 기울어집니다. 더 무서운 건 맞물리는 위쪽(또는 아래쪽) 치아가 "어? 닿는 게 없네?" 하고 밑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 제작자의 비명 : 이렇게 치아가 미세하게 이동해버리면, 일주일 전에 본뜬 모델에 맞춰 제작한 최종 보철물이 입안에 안 들어갑니다. 기껏 다 만들어 놨는데 처음부터 다시 깎고 다시 본을 떠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임시치아는 치아들이 딴청 피우지 못하게 꽉 잡아주는 '군기반장' 역할을 합니다.

 

4. "선생님, 냄새가 너무 심해요" (재료의 비밀)

 

임시치아를 사용하다가 빠져서 오신 분들이 가장 민망해하는 부분이 바로 '고약한 냄새'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냄새가 나는 건 환자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 레진(Resin)의 한계 : 임시치아를 만드는 플라스틱(레진) 재료는 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다공성 구조'입니다. 이 구멍 사이로 침과 음식물 국물이 스며듭니다. 일주일 동안 설거지 안 한 플라스틱 반찬통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냄새가 안 나는 게 이상한 겁니다.
  • 해결책 : 이 냄새는 양치질로 100%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니 냄새가 난다고 너무 박박 닦지 마시고, "아, 재료 특성이구나" 하고 쿨하게 넘기시면 됩니다. 최종 보철물인 금이나 지르코니아는 매끄러워서 냄새가 배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5. 임시치아 절대 안 빠지게 하는 '관리 꿀팁 3가지'

 

임시치아는 나중에 쉽게 빼기 위해 일부러 '약한 접착제(Temporary Cement)'로 붙여놓습니다. 그래서 관리를 잘못하면 쑥 빠집니다.

① 끈적이는 간식 절대 금지 (⭐⭐⭐) 껌, 엿, 카라멜, 떡, 젤리... 이런 '끈적이는(Sticky)' 음식은 임시치아 킬러입니다. 씹었다가 입을 벌리는 순간 접착제보다 강한 끈기 때문에 임시치아가 쏙 빠져버립니다.

② 치실 사용의 기술 임시치아 사이에도 음식물이 낍니다. 치실을 쓰셔도 되는데, 뺄 때가 중요합니다.

  • (X) 위로 튕겨서 뺀다 -> 임시치아가 같이 튀어 나옵니다.
  • (O) 치실을 놓아버리고 옆으로 스르륵 잡아 뺀다.

③ 딱딱한 음식 주의 임시치아는 강도가 자연치아의 1/10 수준으로 약합니다. 오돌뼈나 얼음을 씹으면 100% 깨집니다. 치료받는 쪽으로는 부드러운 음식(두부, 계란, 죽) 위주로 드세요.

 

6. "헉! 임시치아가 빠졌어요!" (응급 대처법)

 

조심했는데도 주말 밤에 툭 하고 빠질 수 있습니다. 당황하지 말고 이렇게 하세요.

  1. 버리지 마세요 : 깨졌더라도 조각을 모아서 가져가면 수리해서 쓸 수 있습니다. 삼키지만 않게 조심하세요.
  2. 다시 끼워보세요 : 거울을 보고 방향을 맞춰 살짝 끼워보세요. 헐거워도 뚜껑처럼 덮여만 있어도 치아 시림과 이동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단, 자다가 삼킬 것 같으면 빼두세요.)
  3. 최대한 빨리 치과 방문 :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치과에 전화하고 가셔야 합니다. 며칠 미루면 위에서 말한 '치아 이동' 때문에 일이 커집니다.

 

마치며 : 임시치아는 '일회용'이 아닙니다

 

환자분들 눈에는 일주일 쓰고 버리는 쓰레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일주일 동안 여러분의 치아 신경을 살리고, 잇몸을 예쁘게 만들고, 치아 배열을 지켜주는 고마운 '보디가드'입니다.

 

조금 불편하고 거칠더라도, "내 비싼 최종 보철물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라고 생각하고 소중하게 다뤄주세요. 기공소에서도 여러분의 편안한 일주일을 위해 더욱 정교하게 깎고 다듬겠습니다.

 


👇 [기공사가 추천하는 '치아 살리는' 글]

1. "그래서 최종 보철물은 뭘로 해요?" 기공사가 밝히는 재료의 진실 [👉 지르코니아 vs PFM? 매일 깎아 만드는 '제작자'가 밝히는 내구성 비교 (클릭)]

2. "비싼 돈 주고 했는데 또 썩었다고요?" [👉 크라운 수명과 교체해야 할 결정적 신호 4가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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